나의 이야기

나의 첫 책 읽기

가을글방 2012. 2. 5. 15:26

     

         나의 첫 번 째 책 교과서

 

나는 일제 강점기 말 무렵에 태어나서 해방이 된 다음 해에 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좋았던 것은 교과서를 받은 일이다.

그 때까지 나는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한 달 만에 한글을 깨우친 나는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교과서를 읽고 또 읽어서 얼마 안 가서 산수 책만 빼고 모든 교과서를 다 외웠다.

내 교과서로는 성이 안 차서 세살 위인 언니의 교과서를 몰래 가져다 읽다가 언니한테 혼나기도 여러번 했다.

6월 한국 전쟁이 일어난 것은 내가 4학년 때이다.

내가 살던 대전으로 서울에서 피난민이 많이 내려왔다.

우리반에도 여러명의 피난민이 전학을 왔는데 놀랍게도 그 아이들은 피난짐 속에

몇 권의 동화책을 가져왔다.

나는 그 아이들을 통해서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쟝발장>, <소공자>, <소공녀>, <삼총사>, <엄마 찾아 삼만리>,

 <이솝 이야기> 같은 세계명작을 빌려서 읽게 되었다.

이 때부터 시작된 나의 책 읽기는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으니 오래 되었다.

나는 책을 빌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고 읽을 책이 없을 때는

아버지가 보시는 홍루몽이나 옥루몽 같은 뭐가 뭔지 모르는 책도 무조건 읽었다.

그 당시는 책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활자로 인쇄된 읽을 거리면 무조건 좋았다.

 

 

        나의 첫 도서관

 

우리 가족은 전쟁중에 전 재산을 폭격으로 잃고 다행히 가족만 살아 남았다.

내가 5학년일 때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갔는데 피난이라기 보다는 생활터전을 찾기 위한

이주였다.

나는 부산에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영도 바닷가에서 서대신동 끝

구덕산 아래에 있는 학교를 삼년동안 걸어서 다녔다.

지각 하지 않으려고 아침에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등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빨리 걸었지만 돌아 오는 길은 여유가 있었다.

그 때 부산의 보수동 길에는  헌 책방 골목이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책이나 심지어는 교과서 까지도 헌 책방에 팔아 식량을 구하던 시절이라

헌 책방은 잘 되었다.

책방 앞에는 으례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얼마 뒤부터 나도 그들의 대열에 끼어 책을 읽기 시작 했다.

책방 주인들은 그렇게 책을 보는 것은 나무라지 않았다.

해가 져서 활자가 안 보일 때면 아쉬운 맘으로 보던 책의 페이지를 기억하고 서가에 꽂아 놓았다가

다음 날 마저 읽곤 했다.

읽다 둔 책이 팔려서 미처 다 읽지 못 할 때도 많았지만 다른 책을 볼 수 있어서 괜찮았다.

두 평 남짓한 헌 책방들, 그 헌 책방 골목의 서가에 있던 책들, 그들은 나의 첫번째 도서관이자

도서관의 장서들이었다.

내가 부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삼년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던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시절의 책 읽기가 오늘 나를 작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하는 첫 도서관, 그리고 고마운 헌 책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헌 책방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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