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벗이 드나들어 문턱이 닳고 책을 많이 읽어 책 선반이 닳고
책만 보는 바보 / 안 소영 / 보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어느 책을 읽을 때 보다 멈추기를 자주 하며 책 읽는 선비 이덕무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표현 하기를 작은 체구에 혈색이 파리하고 남 앞에서 말을 잘 못하며 책 읽는 것 외에는 단 한 가지도 내세울 게 없는
이도저도 아닌 서얼 출신의 책만 읽는 바보라고 했다.
그런데 왜 내게 그런 이덕무가 그 어떤 위인 보다 아름답고 존경스럽고 가까이 가 친하고 싶은 사람으로 다가오는가.
이덕무는 증조 할아버지가 서자(정식 부인이 아닌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여서 아무 잘 못 없이 서자의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다.
조선 시대의 양반들은 후궁을 몇씩 두어도 되는 임금을 따라 했는지 본 부인 외에 작은 댁을 두거나 노비를 취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들 혼 외에서 태어난 자식에게는 엄격하게 차별을 두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양반들이 누리는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다.
서얼출신들은 아무리 문장이 뛰어나고 학문이 깊어도 벼슬길에 나갈 수가 없었고 생계를 위해 상민들 처럼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해서도 안 되었다.
그렇다고 본댁에서 생활비를 주는 것도 아니어서 그들은 그야말로 생계가 막막했다.
반쪽 양반이라고 양반 사회에 얼씬도 못하게 하면서 양반의 피가 흐르니 상민이 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되는 어처구니 없는 틈새의 삶이었다.
그런 가정에서는 대개 아낙들이 삯바느질을 해 연명을 하고 어쩌다 지인들이 나누어주는 적선이 도움의 전부였다.
서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무관도 몸이 약한 이덕무에게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덕무는 자나깨나 글을 읽었다.
그는 벽에 금을 그어 놓고 책 읽기를 했다.
아침에는 동쪽 창가에 책상을 놓고 점심 때는 남쪽, 저녁 때는 서쪽 창가로 햇살을 따라 책상을 옮겨 가며 책을 읽었다.
햇살은 그가 펼친 책 속으로 들어가 살아나 말을 걸고 간서치(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는 책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책 읽기의 깊이는 소문이 나서
"이덕무의 눈을 거치지 않고서야 어찌 책이 제 구실을 하겠는가?"
라며 벗들은 귀한 책이 생기면 자신이 읽기 전에 이덕무에게 먼저 보내었다.
이덕무는 배가 고플 때나 괴로울 때면 더욱 책 읽기를 열심히 했는데 그럴 때면 소리를 내어 책을 읽곤 했다.
이덕무에게 있어서 책은 책 이상이었다.
추운 겨울 얇은 이불로 추위를 이기지 못해 잠 못 이룰 때 이덕무는 이불 위에 책을 죽 올려 책의 온기로 잠이 들고
며칠 째 식량이 떨어져 어린 아이들이 굶주릴 때면 아끼고 아끼던, 어렵사리 구한 책을 팔아 식량을 구하기도 했다.
이덕무는 새로 구입한 책에서 그가 가 보지 못한 새 길을 보았다.
그는 책을 읽으며 남길 발자국으로 생길 새 길에의 기대로 책을 사랑 하는 벗과 책을 서로 빌려주고 빌려보며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어도 책이 만들어 준 길로 거리와 시간을 좁히는 교류를 쌓았다.
오늘날 이덕무를 읽은 독자들이 그가 그랬듯이 아득히 떨어져 있어도 한 눈에 알아보는 벗으로 이덕무를 생각 한다면 그는 기뻐하며 반가워 할까?
이덕무는 그런 벗을 가져 삶이 아름다웠다.
이덕무의 벗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박지원, 홍대용들은
같은 아픔을 지닌 서얼 출신이거나 혹은 귀한 양반이기도 하며 또는 스승들이었으나
책과 학문을 통한 벗들이었다.
이덕무와 책을 같이 읽은 벗들은 그들 한명 한명의 삶이 본 받아 마땅한 모범적인 삶이었다.
그들은 가난하였으나 비굴 하지 않았고 신분의 구별이 엄격한 사회에서 그들 자신은 차별을 받았으나 벗을 사귐에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서로의 인격을 존중 하였다.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하려면 그의 주변 벗들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이 이덕무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와 벗한 출중한 인물들의 삶이 살아 있어 더욱 값지다.
그들은 쓰임새가 보이지 않았지만 학문에의 열정을 멈추지 않았고 학문을 사랑했다. 그 사랑은 그들을 학문 자체이게 했다.
그렇게 닦은 학문은 헛되지 않았으니 이덕무들은 좋은 군주 정조대왕을 만나
비로소 그들의 학문의 쓰임새를 찾게 되고 후세에 그 업적을 남긴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을 쓴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았던 시간을 나누는 일이다.
시간을 나누는 사람은 곧 벗이다.
어딘가 있을 이 시대의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들이여, 당신들은 아름답다.
틀림없는 간서치일 작가 안소영에게 감히 간서치이기를 바라며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