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책읽자

더불어 숲

가을글방 2012. 7. 14. 11:41

 

       신영복 교수의 숲을 통한 세상 보기

      더불어 숲  /  신영복  /  랜덤 하우스 코리아

 

나의 책 읽기는 저자의 면면을 살펴 보는데서 시작된다.

그것은 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이 책 <더불어 숲>의 저자 신영복 교수에 대해서는 이미 읽은 몇 권의 책을 통해서,

그보다 앞서 우리의 어둡고 아픈 25년 암흑 시대를 가장 아프게 살아 온 한 지식인으로 낯 익다.

저자는 1962년에 시작되어 25년간 걸친 군사 쿠데타 정권 하에서 맨 몸으로 저항해 온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으며

가혹한 형벌에 자칫 몸을 잃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그가 20년 20일을 단절과 고독의 감옥에서 보내고도 마음과 몸을 잃지 않고 우리에게 돌아 온 일은 통곡하도록 감사한 일이다.

이 책 <더불어 숲>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그의 귀환을 기뻐하며 그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세상을 다녀 본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의 관점이 각각이듯이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같은 곳이라도 다 다르다.

신영복 교수의 세상 보기는 20년이 넘는 동안 닫힌 공간에 있던 그의 사유가 열린 세상을 향한 그리움의 산물이기에

그 어떤 세상 보기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한겨레 신문을 통해 전해 오던 그의 엽서를 읽으며 내내 눈시울이 젖었던 일을 기억한다.

고뇌가 없는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화려함과 유행, 값나가는 물질이 대부분이라면

신영복 교수의 눈에는 도처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청정한 살아 있는 나무 같은 삶과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루어진 숲이다.

개인의 삶이나 국가의 운명이나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시련에 찬 굴곡이고 그 시련을 이겨내는 힘은

언제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희생이다.

그들이 겪는 한 시대의 굴절과 희생은 흥망 성쇠의 역사 속에 문화로 남는다.

더 많이 아파본 사람만이 덜 아픈 사람을 위로 할 수 있듯이 그들의 지나간 삶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길을 가르쳐 준다.

저자의 발길을 따라가며 느끼는 것은 저자의 해박한 이해이다.

그는 동서 고금의 역사와 문화를 보는 남다른 눈으로,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애정으로 발길 닿는 곳을 바라본다.

때로는 준엄하고 날카롭게 비판을 하고 또 때로는 자칫 우리가 잊었거나 폄하한 귀한 것들을 찾아내 보여준다.

어느 곳에서는 역사를 또 어느 곳에서는 경제를 또 다른 곳에서는 문화를 얘기하되 그의 생각 아래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들어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과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온 힘이 보이지 않는 곳에도 있음을 누누히 강조한다.

그것은 강조가 아니고 되풀이 되는 힘이다.

인도나 티벳의, 겉 보기에 가난하나 본성을 고고히 간직하고 살아가는 적게 가진 사람들의 결코 가난하지 않은 삶과

아메리칸 드림의 광기 속에 묻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뿌리 깊은 정신과

황금을 몰수해 간 스페인 해적들이 결코 가져갈 수 없었던 잉카인들의 잠적.

정복하고 소유하기에 광기를 넘어선 자들을 말없이 이겨낸 장엄하고 척박한 땅들의 애정을 우리는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서른이 되기 전의 젊은 나이에 갇혀 오십이 다 되어 나온 그가 그 길고 긴 세월의 아픔을 내공으로 이겨내고 바라본 세상은 그래서 더욱 눈부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그리고 아프리카의 오지와 고대문명의 희미해진 흔적 찾기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의 숨막히는 발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길이 남긴 일년을 책 한권으로 읽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명한 독자라면 그가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찾아 시간을 보태고

편하게 앉아 읽기를 넘어 우리가 갈 수 있는 곳 한 곳이라도 그의 뒤를 따라가 볼 일이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나도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많이 부족하여 나무가 될 수 없다면 그의 발 밑에 떨어져 거름이 되는 한 잎 가랑잎이라도 되고 싶다.

그리하여 가뭄과 더위를 지나 신성한 쉼터가 되는 숲이고 싶다.

 

숲에는 많은 나무가 있다.

기개 높게 쭉 뻗어 올라간 나무도 있고

키 작은 나무도 있으며

꽃은 피우는 나무,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고

꽃도 열매도 없고 그저 구불구불 멋대로 자라 땔감 밖에 못 되는 잡목도 있다.

그러나 숲은 그 모든 나무가 어울려 이루어지고

숲은 그 모든 나무를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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