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 김영갑 글 사진 / 휴먼북스
우리나라 사람에게 제주는 가 보았건 아직 가 보지 못했건 영원히 그리운 섬이다.
나는 우연히 제주에 가서 만 2년간을 그 곳에서 살았다.
일년 내내 불어대는 바람과 삽질 한 번이 수월치 않은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돌 많은 땅과
그럼에도 청정하고 아름다운 바다와 섬 도처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는 내내 외지인인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제주 공항에 내려서 광광객들이 챙기는 안내서에는 그런 가 볼만한 곳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내가 제주에 있을 때 나를 찾아온 친지들에게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그런 관광지가 아닌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다.
<김영갑 갤러리>는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폐교된 초등학교를 빌려서 그가
루게릭 병으로 사위어 가는 몸의 마지막 힘으로 혼자 일구어 낸 곳이다.
사진 작가인 김영갑은 전국 곳굿은 누비며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에 담은 작가다.
그는 25살이 되던 해인 1982년 제주에 들렀다가 그곳에 반해 그가 마흔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로지 그 섬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같이 숨쉬고 그리고 기록으로 예술로 남기면 살았다.
들판에는 내 마음을 사로 잡는 풍경이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 할 때마다 찾아가 세상을 탓하고
나 자신을 탓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투정도 부려 봅니다.
하지만 들판은 한결 같이 반갑게 맞아줄 뿐입니다.
그리고 새들을 초대해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풀벌레를 초대해 반주를 하게 합니다 .
구름과 안개를 초대해 강렬한 빛을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해와 달을 초대해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어 줍니다.
눈과 비를 초대해 춤판을 벌이게 합니다.
새로운 희망을 보여줍니다.
마음이 평온 할 때면 나는 그 들판을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마음이 불편해 져야 그 들판을 생각합니다.
그래도 들판은 즐거운 축제의 무대를 어김없이 펼쳐줍니다.
들판이 펼쳐논 축제의 무대를 즐기다 보면 다시 기운이 납니다.
그런 들판으로부터 받기만 할 뿐, 나는 단 한 번도
되돌려 주지 않았습니다. 들판은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는 마흔 한 살에 카메라의 셔터를 누룰 수 조차 없게 된 (루게릭병)에 걸린다.
돈 되는 일을 마다하고 오로지 자신이 사랑한,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 준 자연과의 만남을 찾아 사진을 찍던 그는
한 겨울의 김치찌개, 비 오는 날의 얼큰한 해물탕(해물이 지천인 제주도에서) 한 그릇,
빵집 앞을 지나며 배고파 그렇게 먹고 싶었던 김 오르는 찐 빵 한 개를 안 먹고
그렇게 돈을 아껴 산 필름으로 애간장 태우며 기다렸던 기막힌 순간을 찍을 수 없게 된다.
김영갑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닥쳐오는 엄청난 비극과 고통, 그러나 김영갑은 그 모든 고통은 한 동안 머물다 떠날 거라고 믿는다.
김영갑은 제주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일년 내내 섬째 흔드는 거센 바람에 시달리는 나무와
마치 경주의 대릉원 처럼 인고의 세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섬 전체에 퍼져 있는 오백이 넘는 오름을 사랑했다.
김영갑 갤러리에서는 그가 남긴 사진들을 순환 전시해서 여러번 가 볼 수록 많은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는 살아 있는 마지막 한 가닥의 힘을 그러모아 황량한 폐교를 그 무엇으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갤러리로 만들었다.
그는 그곳에 뿌려진 유해로 살아, 방문객과 함께 그가 남긴 사진들을, 그리고 그가 미쳐 못 남긴 풍경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보고 온 후나 가 보기 전 미리 보는 것이나 차이 없이 큰 감동을 준다.
제주, 그 섬에 그 사람 김영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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